1.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알쓸신잡에도 출연하고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작별 인사> 등의 소설을 쓴 잘나가는 작가 김영하님이 제가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에 강연을 오셨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작가님의 강연을 경청하고 싶어 일부러 한 시간 먼저 강연장에 도착해 맨 앞자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주제로 1시간 30분 동안 강의를 해주셨는데요. 작가님의 책 대부분을 읽고 소장하고 있는 열혈독자로서 좀더 깊이 있는 주제의 강의를 기대해서인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쉬운 이야기를 주로 하셔서 강의를 듣는 동안에는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강의를 되새겨보니 점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강의 중에 기억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수만년의 진화 과정을 거치며 이만큼 달라졌는데, 그건 바로 픽션 즉, 이야기의 힘입니다. 이야기는 오래 기억되는 법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배운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타인의 경우에는 단순화시킵니다. 고아여서, 어릴 때 응석받이로 자라서, 자기밖에 몰라서 그런 거라고 쉽게 단정짓습니다. 픽션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복잡하고 알아내기 힘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한마디로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생각없이 쉽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아내가 해준 조언이 있습니다. '할까 말까 싶은 일은 하는 게 옳고, 할까 말까 싶은 말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금과옥조로 여기고 지키려 노력하는데도 자꾸 까먹고 실수를 되풀이하는 제게 좀더 강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래서 떠오른 게 바로 영화 <올드보이>입니다. 단순한 말실수로 인해 엄청난 복수의 대상자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아내의 말을 잘 듣는 남자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2. 말조심을 해야 하는 이유, 영화 올드보이 줄거리
<올드보이>는 2003년에 개봉한 한국영화로 박찬욱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2004년 제57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입니다. 개봉한지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더불어 한국 영화 산업을 대표할 만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평범한 회사원 오대수는 만취해서 집에 돌아가던 도중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붙잡혀 어느 골방에 갇힙니다. 무려 15년이 지난 후에 풀려난 오대수는 복수심에 불타 자신을 납치하고 감금한 사람이 누구인지 캐내려 합니다. 그러는 도중 미도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감금되어 있는 동안 오직 군만두만을 먹으며 지냈던 오대수는 자신이 먹었던 군만두의 맛을 기억해내며 수많은 중국집을 뒤져 자신이 먹은 군만두를 만든 중국집을 찾아내고, 자신이 있던 감금방을 찾아가 수많은 조직폭력배들과 결투를 벌이는 등 노력을 하지만, 갑자기 그를 감금한 이우진이 태연히 나타납니다.
이우진은 오대수가 왜 갇혔는지를 5일 안에 알아내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제안합니다. 결국 오대수는 이우진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문이었고, 서울로 전학가면서 이우진과 이우진의 친누나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없이 말하고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냅니다.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말했을 뿐이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완전히 잊어버린 일이지만,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이우진의 누나는 상상임신을 하게 되고 결국 투신자살까지 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해답을 알게 된 오대수는 이우진을 찾아가는데, 이우진은 미도가 사실은 오대수의 친딸이며, 두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만들었음을 폭로합니다. 15년동안 감금했다 풀어 준 이유는 오대수 역시 자신처럼 근친상간을 하게 만들어 복수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미도에게도 알리려는 이우진을 막기 위해 오대수는 스스로 혀를 자르며 속죄하고, 이우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살합니다.
어떻게든 영화의 내용을 스포하지 않고 줄거리를 써보려고 했더니 무려 글을 시작한지 3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내용을 말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바로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3.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하지 마라, 할까 말까 고민되는 일은 해라
영화 <올드보이>는 파격적인 영상도 많고, 탁월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에 볼 때는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과 스토리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수차례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작품의 메시지는 바로 '함부로 놀린 가벼운 혓바닥의 죄'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한번 뱉으면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쏟아진 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말은 사람의 영혼까지 난도질하는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고, 말로 받은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나 악성 댓글, 그리고 추측성 보도로 상처 입고 생을 마감한 여러 사람들, 특히 최근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나의 아저씨> 이선균이 떠오릅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앞으로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배를 묶은 밧줄을 풀어라. 안전한 부두를 떠나 항해하라. 무역풍을 타라.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하지 않고, 할까 말까 고민되는 일은 과감히 실행하는 사람으로 익어가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영화 <올드보이>를 다시 보고서 말입니다.
4. 영화 <올드보이>의 원작은 일본 만화
영화 <올드보이>는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입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일본의 만화잡지 액션에 연재된 스릴러 장르의 만화로 총 8권으로 완결되는 만화입니다.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봉준호 감독이 올드보이 만화 이야기를 하며 실사화를 하면 어떨까하고 박찬욱 감독에게 권유했다고 합니다.
원래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한 작품이었기에 박찬욱 감독은 약 2만 달러(한화로 약 2,000만 원)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권을 구입해서 영화로 만듭니다. 스토리 작가는 츠치야 가론, 작화가는 미네기시 신메이인데, 원작자들은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인터넷 뉴스를 통해 영화화된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허공에 주먹을 내지를 정도로 기뻐했다고도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저도 원작만화를 구해서 읽어봤는데, 원작과는 다른 부분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2시간 정도의 영화 진행으로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박찬욱 감독은 근친상간 설정 등 많은 부분을 재창조한 것입니다. 영화 제작 이후 박찬욱 감독은 원작자를 만나자마자 '죄송하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담>탈출을 다른 영화는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명작 <쇼생크 탈출>도 함께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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