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를 휩쓴 최고의 무협 영화 와호장룡, 이것이 정통 무협이다

 

1. 홍콩 액션 영화를 추억하다

어릴 적 동네 마을 회관 앞은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마을 회관 담벼락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나 여러 광고지가 붙기도 했지만 우리들의 관심은 언제나 영화 포스터였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아저씨가 전에 붙여 놓은 포스터 위를 풀이 묻은 롤러로 한번 쓱 문지릅니다. 다시 새 포스터를 위에 붙이고 롤러질을 한번 더 하고는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버스를 타고 40분이나 가야 하는 시내에나 있는 극장에는 갈 수 없었지만, 우리는 충분히 포스터만으로도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멋지게 폼을 잡은 주연 배우의 모습과 왠지 재밌을 것만 같은 영화 제목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죠.

 

이소룡은 왜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이소룡과 성룡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도대체 쌍절곤은 어떻게 돌리는 걸까? 이런 얘기들을 나누며 무술 고수를 꿈꾸기도 했지요. 어쩌다 한번 TV에서 방영되는 무협영화나 태권도장에서 가끔 보여주던 성룡의 액션 영화라도 본 날에는 영화를 본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의 느와르 영화가 등장합니다. 권법이나 검이 아닌 총을 들고 현란한 액션 영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죠. 요즘엔 한류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 K-Pop이 세계에서 호평받고 있지만 그 시절엔 홍콩의 영화들이 대세였습니다. 홍콩 인기스타들이 우리나라의 TV CF에 등장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의 주윤발은 그렇게 소년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1980년대를 풍미한 홍콩 느와르는 도박을 다룬 코믹으로 장르를 넓히다 점점 사그라들어갑니다. 이후에는 다시 무협 판타지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왕조현의 <천녀유혼>, 임청하의 <동방불패>, 이연걸의 <황비홍> 등이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다 무협 영화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는 <와호장룡>이 1994년에 개봉됩니다. <와호장룡>은 개봉 당시부터 홍콩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약 2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거두었으며,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으며, 무려 6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2. 최고의 무협 영화, 와호장룡 간단 줄거리

영화 <와호장룡>은 19세기 청나라 말엽 혼란기의 중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최고의 문파인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 리무바이(주윤발)는 사부가 자객에게 목숨을 잃자, 강호를 떠날 결심을 합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명검인 청명검을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가진 수련(양자경)에게 맡깁니다. 리무바이와 수련은 서로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이였습니다.

 

수련은 무당파와 관련이 많은 호족 페이러에게 청명검을 전해주려 하고, 그러던 중 고관의 딸 용(장쯔이)을 만납니다. 강호의 삶을 동경하는 용은 아버지에 의한 정략결혼을 강요받고 있었지만, 자신을 납치했다 풀어주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마적단 두목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정체 모를 자객이 청명검을 훔치고, 수련은 범인의 뒤를 쫓아가 결투를 벌이지만, 검을 잃고 맙니다. 수련은 범인으로 용을 의심하게 됩니다. 수련과 함께 청명검을 찾아 나선 리무바이는 용을 자신의 사문인 무당파의 무공을 전수받을 수제자로 삼고 싶어 하지만 용은 거절합니다. 마침내 수련과 용은 운명적인 관계로 맞서게 됩니다.

 

3. 와호장룡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의 제목 와호장룡은 한자로 하면 臥虎藏龍이고, 영어로는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입니다. 쉽게 말해 누워 있는 호랑이, 숨어 있는 용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 익숙하게 느낀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최고의 전략가 제갈공명을 '와룡'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영화 와호장룡은 <색계>로 유명한 이안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이안 감독은 2006년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2013년에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은 영화 연출자입니다.

 

영화의 원작은 고전무협 소설입니다. 1941년 왕두루가 신문에 연재한 <학철오부곡> 중 4부에 해당하는 부분을 영화로 연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원작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청강만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영화는 홍콩에서는 1994년에 개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에 개봉되었습니다. 골수 무협팬들에게서 사랑받았지만 우리나라의 평점은 그렇게 높지 못합니다. 하지만 북미권에서 대단한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습니다. <타임>에서는 2000년도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을 뿐만 아니라, 역대 최고의 외국어 영화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미에서만 1억 3천 만불에 육박하는 성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제가 예전에 다룬 프랑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거의 3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진정한 사랑 영화 소개

 

무협 영화답게 화려한 검술과 액션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예술적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후반부의 대나무 숲에서 펼쳐진 와이어 액션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유명합니다. 자칫 어색해 보이기 쉬운 와이어 액션이라는 기술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첨단 CG 기술에 익숙해진 지금의 눈높이로 보더라도 대단하기만 합니다.

 

<여담> 홍콩이 중화권 영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지만 대만에서 만들어진 영화도 있습니다. 대만 영화의 대명사가 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도 함께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클래식 선율과 최고의 타임슬립 대만 영화 소개